단어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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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고 나서도 그 영혼의 울림을 영원히 기리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영혼의 울림을 기리면 뭐가 좋으냐고? 그 소리를 들은 후손들한테 복권 당첨 번호를 읊어줄 수 있으니까 좋지.

다만 그 기림의 방식이 너무도 기괴해,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또한 아무 때나 벌일 수도 없었다.

망자의 두피를 벗겨 북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장인이 마을을 지나갈 때만 그 일이 가능했는데, 손위 가족 중 누군가가 최근에 죽은 부자들은 그녀의 재주를 우선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앞다투어 지갑을 열었다. 부자만 더 부자가 된다는 원망이 속출했다.

장인도 그 원망을 십분 이해하는 바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야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받았을 뿐이었다. 모두가 자기 재주를 이용하길 원하니 순번 배정 차원에서 돈이라는 기준을 썼었다.

그게 아니면 뭘 쓰겠는가? 미모순으로 손님을 줄 세우리? 아님 힘이 센 순으로? 가문이 좋은 순으로? 아니면 세상 모호한, ‘착함’의 기준으로?

가문의 명예를 지킨답시고 멀쩡한 사람을 찢어발겨 죽이는 부족도 있다는 걸 장인은 잘 알았다. 그렇게나 많은 곳곳을 오래도록 유랑해 왔다. 그런 짓을 벌이는 자들은 자기가 착한 줄 알았다.

뭔가를 줄 세우기의 기준으로 삼을 거라면, 그나마 돈이 제일 나았다.

하지만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장인에게는 유랑하며 가지고 다니기에 벅찬 드레스 백 벌이 있었고, 구두 천 켤레가 있었으며, 반지며 귀걸이의 개수는 만 개에 달했다. 장인의 행렬을 멀리서부터 목격하고는 그 소식을 전달하는 일로 연명하는 ‘장인 스포터’ 역할을 하는 가난한 어린애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장인은 유명했고, 부유했고, 가진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장인은 다음으로 도착한 마을에서는 이렇게 했다. 제대로 줄을 서지도 않고 자기네끼리 먼저 돈을 내겠다고 싸우고 있는 부자들의 지갑을 전부 뿌리치고, 자신의 도착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 소녀에게 다가간 것이다.

돈이라는 기준을 버릴 작정이었으니, 뭐라도 기준이 필요했고, 그렇다면 순전한 운—이를테면 이 아이가 마침 적당히 뛰어다닐 수 있되 더 복잡한 직업을 갖기엔 이른 나이었다는 점, 눈이 좋았다는 점, 가난했다는 점 등—에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소녀의 옷은 허름했고, 신발은 없었으며, 물론 장신구 따위도 없었다.

“손위 가족 중 누구 죽은 사람 있니?”

마침 있었다. 계시라고 장인은 생각했다. 어젯밤 돌아가신 소녀의 할머니였다.

장인은 할머니 시체를 깨끗이 씻고, 두피를 벗겨 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눈에 불을 켜고 소녀의 집을 염탐하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소녀에게 조용히 그것을 건넸다.

소녀는 최대한 작게 북을 쳤다.

둥.둥.둥. 치다가 더는 소리가 나지 않자, 장인이 숫자 3을 적었다.

둥.둥.둥.둥.둥. 치다가 더는 소리가 나지 않자, 장인이 숫자 5를 적었다.

이런 식으로 여섯 숫자가 나왔고, 즉시 장인은 소녀의 손을 잡고 복권을 사러 집을 나섰다.

암만 복권 번호를 위해 장인이 마을을 지나갈 때를 맞춰 손위 가족이 죽기를 바라는 머저리들이더라도, 문밖에서 칼을 들고 진을 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