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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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턱 -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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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재판이지, 이건 사실 교수형 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왕국 사람들 모두가 그걸 알았다. 목을 매달 줄을 준비해놓고 재판을 시작하는 법이 어딨단 말인가?

아, 법. 여깄지. 이 왕국에.

어린 폭군은 수년 전부터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차라리 누가 침략해서 저놈을 죽여줬으면’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한참 되었다.

그런데 그 폭군에게 아직까지도 옳은 말을 하던 마지막 신하가 바로 내일 아침 교수형에 처해질 턱 공이었다.

턱 공이라니. 공, 그러니까 높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호칭. 그리고 턱은 그래, 얼굴에 달린 턱.

물론 진짜 이름이 ‘턱’일 턱은 없었다.

턱은 그저 그 사람의 턱이 너무나 크고 길어서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만약 이자가 폭군에게 충언을 드리는 자라는 소문이 돌지 않았더라면 필시 욕을 먹을 만한, 그런 턱이었다. 턱이 못생긴 게 뭔 잘못도 아닌데, 그렇게 눈에 보이는 추함이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흠이었으니, 욕하기가 쉽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욕도 다 옛날 말이었다. 지금 이렇게 또 하나의 애꿎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을 상황이었으니,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그 유명하고 못생긴 턱을 생각하며 예정된 죽음을 애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턱 공은 내일 재판을 위해 이미 궁 앞 광장에 준비된 교수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감옥에 앉은 채 전부 들었다. 일꾼들이 나무에 망치질을 하고, 두꺼운 밧줄로 된 올가미의 크기를 조절하는 소리를. 간수들이 괜히 불쌍해하는 눈길을 던지는 것도 눈치챘다. 그는 턱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좁은 짚단 침대에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가 들끓는 침대였다. 그게 가장 신경 쓰였다. 정의감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앞으로 살 사람들이 어찌 될지도 솔직히 관심 없었다. 그래도 걔네는 살 게 아닌가? 산 사람 걱정은 산 사람이 할 일이지. 내 동정까지 바라는 건가? 그냥 다 망하라지. 내가 죽고서 이 왕국이 망하든 말든 지금 뭔 상관이람. 니미럴.

그때였다. 누가 속삭인 게.

“저기요. 턱 공 님.”

내일이면 죽을 사람한테 아직도 턱 공이라니.

“거 누구요?”

“턱 공 님.”

또 망할 턱 공거리며 등장한 건 웬 여자였다.

여자가 예쁘길래 턱 공의 화는 즉시 누그러졌다. 처음 보는 머리색을 가진 사람이었다. 은색이긴 했는데 피부가 탱탱한 걸 보니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천연인 것 같았다.

턱 공은 마지막으로 여자한테 잘 보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일 죽을 거라도 반드시 이걸 잘해내야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긴 어떻게 들어왔소?”

“모두가 턱 공 님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으니, 당연히 도움을 받아 들어올 수 있었죠.”

그러더니 망토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는 게 아닌가.

“이걸 드세요.”

“이게 무엇이오?”

“살 수 있는 방법이랍니다.”

정체불명의 은발 미녀는 턱 공이 그 유리병을 받자마자 홀연히 사라졌고, 턱 공은 어차피 죽을 건데 이게 독살이든 말든 뭔 상관이랴 싶어 그걸 마셨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귀찮은 일이 발생했다.

밤새 고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간수들은 난감해했다. 턱 공 님이 차라리 열로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열은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고통. 그렇다고 교수형이 깔끔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의사를 불러야 하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턱 공의 열은 말끔히 내렸다. 다만 턱 공과 간수들은 놀랍게도 변모한 턱 공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