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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아니 사방에서 매미가 끝도 없이 울어댔다. 녀석들은 미칠 듯이 뜨거운 태양 아래 싱그러움을 잃은 짙은 녹음의 깊은 곳에서 도사렸다. 그 와중에 케빈의 손에는 장례식 전보다 더 무거워진 듯한 유골함에 담긴 에밀리가 들려 있었다.

어쩌면 이 무게는 그의 정신이 치는 장난이리라. 고통에 처한 신체는 정신 또한 고통에 빠뜨리니까. 몇 가닥 안 되는 회색 머리카락은 그의 두피에, 검은 양복 재킷 아래 입은 흰 셔츠는 등과 가슴에, 그리고 양복바지 밑의 사각팬티는 엉덩이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들, 그리고 보호라는 미명 아래 그 몸을 감싸 안은 모든 입자들이 늘 케빈 곁에 있다는 걸 입증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자기들 존재를 알림으로써, 또한 이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며 조의를 표함으로써 위로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오늘의 문제들은 에밀리만 살아 있었더라면 간단히 해결되었을,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문제들인데.

하지만 그녀는 죽었다.

그리하여 케빈은 지난 두어 시간 동안 들이마신 터무니없는 양의 향수에 진이 빠져있었다. 에밀리가 ‘케빈 같은 부류’와 결혼함으로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속해 있었던 바로 그 ‘우리 쪽 사람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자들이 이런 자리에 오면서도 뿌려댄, 바로 그 향수 때문에 말이다.

작은따옴표 속 발언은 겉으로만 예의를 차리는 먼 친척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까 전에 그들이 문 바로 바깥,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쑥덕거리는 동안 케빈은 문 바로 안쪽, 코너를 끼면 나타나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은 케빈이 이렇게나 자그마하며,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교회를 고른 게 얼마나 마땅치 않은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무려 자기네 친척의 장례식인데! 아니, 아니지. 그보다는, 태생이 태생인지라 예전에는 자기네 친척이었지만, 그런 대단한 행운을 ‘사랑’이라는 말랑말랑하며 만질 수 없고 쓰잘데기 없는 미친 감정 때문에 내던진 여자의 장례식이라고 해야 하겠지.

바로 이 친척들 때문에 케빈은 답답한 교회에서 뛰쳐나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바깥의 열기를 택했던 것이다. 그들, 그리고 향수 악취를 풍기는 다른 많은 조문객들 때문에.

적어도 백여 명이 오간 장례식이었다. 에밀리의 언니와 오빠는 죽은 피붙이의 평판을 구원할 이 마지막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어 했다. 그로써 자기네 평판도 구원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장관과 포츈 500 관련자와 유명인을 부를 수밖에.

문제는 그 중 대략 절반 정도가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았단 거다. 또한 어딘가로 떠나버린 자기네 상식이라는 것과 연락을 취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했더라면, 하고많은 날 중 하필이면 이 무더운 여름날, 그것도 하필이면 교회 장례식에 가야 하는 날에 네다섯 겹의 향수를 뿌려대는 게 나쁜 결정이라는 걸 깨달았을 터였다. 왜냐고? 이 세상은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으며, 상식이 자리를 뜬 다른 인간들로 넘쳐나니까. 조금이라도 논리적 사고라고 부를 만한 게 있는 사람이라면, 기상 캐스터의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자기가 상식이 없다는 것조차 모르는 인간들로 이 교회가 넘칠 게 뻔하다는 걸 알았을 테고, 따라서 비싼 향수인 척하는 싸구려 향수로 꽉 찰 것도 알았을 것이며, 따라서 이런 자리를 흔히 메우는, 보이지 않는 처참한 쓰레기더미라고 불러도 무방할 답답한 교회 공기에 굳이 뭘 더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웬걸, 과거에 에밀리 ‘쪽 사람들’이었던 자들 중에는 논리적 사고 능력을 갖춘 자가 충분치 않았다. 그녀의 친척들이 믿는 바와는 달리, 논리적 사고 능력은 재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는 향수를 치덕치덕 뿌린 작자들로 넘쳐났다. 물론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더 많이 뿌려댈수록 후각은 더욱 피로해진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가 충분히 좋지 않다고 여기게 되어 ‘좋다’고 불리는 냄새를 더 뿌리게 되고, ‘좋은’ 그것은 구역질 나도록 지독해졌던 것이었다.

케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다고 그의 콧구멍 앞을 젤리처럼 걸쭉하게 막은 공기가 순순히 비켜주지는 않았다. 즉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참 이상했다. 힘껏 숨을 내쉬지 못한다고 해서 제대로 숨을 들이쉬지 못하는 기분이 들다니. 이런 무력한 느낌은 그의 머릿속 상상인 게 분명했다. 불충분한 날숨을 행하면서 부적절한 들숨을 예측했던 것이다.

마치 이 불충분한 장례식장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부적절한 인생을 예측하듯이 말이다.

그랬다. 그의 인생은 부적절할 터였다. 에밀리의 친척들 앞에서라면 절대 시인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확신했다. 그들 말이 맞았다. 그는 실패자였고, 늘 그래왔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사람은 에밀리뿐이었다. 이제 에밀리가 떠났으니 진실로부터 그를 지켜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고대할 만한 거라고는 죽는 날까지 외로운 침대에서 홀로 잠드는 것, 그리고 죽는 날까지 혼자서 저녁을 먹는 것, 그리고 죽는 날까지 그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 어떤 장례식도 에밀리와 작별하는 일에 충분할 턱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자기 성찰에서 헤어나오고 싶으면서도 그럴 수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장례식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더라면 지금껏 했던 모든 생각들을 연결시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에밀리와 함께하는 그는 향수처럼 좋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에밀리가 없으니, 좋았던 그는 구역질 나도록 지독해졌다.

생각이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반추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실버 라이닝’이라고 부르는,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라도 간직한다는 그 흰 가장자리, 그러니까 밝은 희망이 있을 법도 한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속이 안 좋아졌다.

실버 라이닝이란 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 구름에나 어울리는 거였다.

그런데 구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생각이……

한 멍청한 헬리콥터 조종사에게로 향했다. 그자는 전문가였어야 했으나 분명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었다. 왜냐하면 2주 전, 그 숙명적인 구름 낀 날, 그자는 일기예보는 물론이고 자기 상식도 무시했으니까. 그자 때문에 ‘이제 우리 부부가 둘 다 은퇴했으니 예약한 투어 패키지의 가장 신나는 부분’에 에밀리가 탑승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좋은 케빈에서 지독한 케빈으로 변하는 건 그렇게나 간단했다. 케빈이 그녀와 함께 헬리콥터에 탔더라면 케빈도 죽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경험할 필요 없었겠지.

바로 이 답답한 공기.

또한 일기예보를 무시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작자의 멍청함.

그리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 상식이란 것의 부재.

게다가 곰곰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우나, 케빈 자신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기에 아무리 머릿속에서 밀어내려고 해 봐도 아내의 죽음 이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바로 ‘그 문제’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 문제’란, 바로 필요할 때 행동하지 않았다는 자각이었다. 이는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말미암은 비겁함을 뜻했다.

말장난하는 게 아니었다. 공포란 대개 상식이 발현되는 최고의 방식이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미묘한 감정을 쓴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위험 신호를 무시해버린다. 반면 공포는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데 케빈은 비겁한 놈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 어렵다는 일을 해냈던 것이다. 이는 순전히 그 조종사가 케빈의 두려움을 눈치채고는 불알도 없는 사람이냐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나쁘다고요? 이건 나쁜 날씨 축에도 못 껴요.”

조종사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케빈은 어떻게 했을까? 공포 따위를 느끼는 능력조차 없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조종사가 케빈의 무심한 발언을 (“오늘 구름이 좀 많이 꼈네요?”)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처럼 굴었다. 그건 ‘감정’ 같은 것을 표현한 게 아니었다, 이 말이다. 진짜 남자라면 감정 표현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은가!

에밀리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당신께서 케빈의 ‘진짜 남자성’에 관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의문을 품는지 전혀 감추지 않으셨다. 웬 사유지 관리인의 자식인 케빈이 대체 어떻게 당신 딸에게 걸맞은 진짜 남자성을 갖고 있겠는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케빈이 바로 당신의 사유지에서 자랐다는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은 그분에게는 케빈의 나약함을 증명할 증거가 아주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세 살 때, 사내 녀석이 우느라 바쁜 나머지 잔디 깎는 기계에서 굴러떨어지더라니까.”

그런데 바로 그 ‘사유지 관리인의 자식’이 (에밀리 아버지는 이 구절이 마치 한 단어인 것처럼 말하곤 하셨는데) 열두 살 때부터 동갑인 당신 딸내미에 대해 욕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면……

됐다, 됐어. 그분은 죽은 지 몇십 년도 더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자면 케빈은 열두 살일 때 에밀리에 관해 ‘욕정’ 같은 걸 느끼지 않았었다. 그저 순전히, 아주 단순히 그녀를 흠모했었고, 그때 이후로 멈춘 적 없었을 뿐이었다.

지금, 그녀가 죽은 와중에도.

그리고 그녀가 죽기 전에는 에밀리의 체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었다. 케빈은 진짜 남자였으니까. 그래서 비행하기에 너무 겁이 나며 아내도 비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걸 시인하는 대신에,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었다. 언제나 둘 중 더 용감한 편이었던 에밀리는 (용감하지 않았더라면 ‘케빈 같은 부류’와 결혼하지 않았을 테니) 명랑하게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그렇게 헬리콥터는 날아갔다. 에밀리가 창문을 통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도 손을 흔들었다. 약간 찡그리면서. 두통이 있는 척해야 했으니까. 그게 그들이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케빈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건 지능이 없다고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겁쟁이만이 두려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케빈은 에밀리를 그 헬리콥터에서 끌고 내려왔어야 했다. 그리고 그 멍청한 조종사가 뭐라고 한다면 그놈을 밀쳐내고 에밀리와 도망쳤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에밀리는 죽었다. 케빈은 살았고.

담당자들은 신체 부위들을 모으느라 사고 현장을 뒤져야만 했다. 심지어 신체 부위를 찾은 후에는 그것들을 분리하느라 고생했다.

“이 팔은 그 죽은 여자분 건가? 뭐, 여기 이 다리는 분명 조종사 거네. 털이 얼마나 많은지 보면 알 수 있잖아. 물론 이쪽 전체가 불타버려서 아주 분명한 건 또 아니긴 한데……”

유골함에 든 에밀리는 무거웠다. 정말이지, 장례식 전보다 훨씬 더. 말이 안 됐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케빈 머릿속을 헤집어 벌을 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그런 일을 당해도 쌌다. 먼지가 된 상태로 거의 완벽하게 밀봉된 유골함에 들어있는데도 에밀리는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대기 중 습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 놀랍진 않았다. 살아서도 그녀는 독창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지역의 비공식적 공주님에서 ‘미쳐 돌아서는 그 보잘것없는 작자와 결혼한 그 여자’로 변신할 수 있었겠지. 그러니 죽어서도, 유해의 형태로도 창의적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값싼 향수 냄새가 훅, 케빈의 콧구멍에 다다랐다. 이 때문에 그는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되새기게 되었다. 그는 교회 바로 바깥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뒤뜰, 건물과 묘비들 사이에.

매미들은 아직 울어대기를 멈추지 않은 상태였다. 해는 여전히 뜨거웠다. 공기는 향수를 뿌린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을 때만 마법처럼 춤추고는, 그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 거나 다름없었다.

케빈은 에밀리를 더욱 꽉 껴안고 방해꾼을 노려보았다.

“저기요.”

무슨 말을 할지 정하지도 않고서 일단 불러보았다.

그 사람은 특히나 오래된 듯 보이는 묘비를 관찰하려고 케빈을 스쳐 지나갔던 참이었는데, 이제 뒤돌아 케빈을 쳐다보았다.

케빈은 한 걸음 물러섰다. 태고의 위험 신호, 공포의 전율, 바로 그것에 사로잡혀서였다.

왜일까? 만약 누군가 물었다면 그는 답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냥 한 여자일 뿐이었다. 기나긴 은빛 드레스와 기나긴 은빛 머리카락 때문에 기이해 보이긴 하지만, 그저 이십 대 여자일 뿐……

아닌가? 저 은빛 머리카락이 자연산일까?

케빈은 미간을 찡그렸다. 노안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젊은이란 그 특유의 유연함과 부주의함으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지 않나? 어떤 식으로 몸을 망쳐놓든 부작용은 아직 완전히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며, 얼마나 불필요한 동작을 많이 해대든 근육과 뼈는 항의하지 않았다.

낭비란 젊은 자들의 사치였다. 젊은 그것이 인간이건 문명이건 상관없었다. 차후에 등장할 세포나 차후에 등장할 인간들이 결과에 시달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자들은 ‘부정적 파급’ 같은 게 뭔지도 몰랐다.

이 여자는 젊은 게 분명했다. 진을 빼는 태양 아래에서도 머리카락에 너무 건강한 윤기가 흘렀다. 이게 요즘 젊은이들 사이의 유행인가? 늙은 척하는 게? 늙은 게 이제 쿨하다고 여겨지는 건가? 마치 옛날 언젠가, 가난한 게 쿨하다고 자신과 타인을 납득시키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육십 대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케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늙은 건 죄가 아니었으나, 그다지 쿨하지도 않았다. 젊은 사람이, 그러니까 젊다는 건 ‘에밀리와 내가 아이를 가졌더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아이를 가졌더라면 댁은 우리 손주 나이대였을 거야’ 수준의 젊음인데, 아무튼 그런 사람이 늙은 ‘척’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참으로 신선하게도 모욕적이라서 케빈은 최대한 분개를 표출하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지만……

본능이 그를 완전히 속인 건 아니었다. 늙어가는 그의 눈에도 분명히 보인 건 바로 이 ‘젊은’ 여자의 평온한 얼굴을 둘러싼 주름이었다.

잠깐. ‘둘러싼 주름’?

그가 서둘러 말했다.

“미안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어요. 가 봐야……”

“잠시만요, 케빈.”

젊은 여자가 말했다.

그는 멈춰 섰다.

“……절 아세요?”

“아직은 모르지만 그건 쉽게 해결할 수 있죠.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가 한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그가 그걸 잡고 악수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더 가까워질수록 주름은 더 선명해졌다. 얼굴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얼굴을 둘러싸는 주름이었다. 마치 가장 최근에 등장한, 웬만해선 이해할 수 없는 오뜨 꾸뛰르 감각이 얼굴 주름 직물로 승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주 고운 실크 포장지처럼 주름이 바람에 흔들거렸고……

……아니지. 불가능했다. 지금은 미풍조차 불지 않았다. 주름 실크는 스스로 흔들리는 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가 악수할 만큼 가까워지자, 실크에는 전혀 주름이 잡히지 않았다는 게 확실해졌다. 여자의 얼굴 위로 잔물결을 형성하는 것은 공기 그 자체였다.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공기. 가장 습한 날에도 그녀가 땀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방금 건조기에 돌린 베개처럼 산뜻할 수 있도록 하는, 바로 그것.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명백한 의도에 대해 케빈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여자는 계속해서 다가왔다. 너무 가까이. 이렇게 되면 악수할 수가 없게 되는데—

—그녀가 부드럽게 에밀리를 데려갔다.

“이봐요!”

“서로 소개할 때만요.”

이 여자한테는 유골함이 무겁지 않은 것 같았다. 손바닥 반쪽으로 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즉, 유골함이 무거워졌다는 건 케빈의 착각이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잘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여자 역시 그의 상상일 확률이 높았다.

열기와 향수로 인한 환각. 그게 바로 이 여자였다. 공기 한 뭉텅이가 웬 사람을 쫓아다니느라 잔물결을 일으키며 주름처럼 보이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환경을 매우 정교하게 조작해서 그런 시각적 농간을 부릴 수야 있겠지만, 설마하니 거의 만져지지 않는 직물을 만들 수는 없었다.

왜 또 직물 얘기를 하느냐 하면, 방금 그가 눈치챈 사실 때문이었다. 이 여자가 입고 있는 은빛 드레스는 만져지지 않았다. 그 드레스의 끝부분은 그의 구두와 바짓단을 통과해 흘러 들어가……

……그를 적셨다.

케빈이 축축한 자기 발을 벙하게 내려다보는 사이 여자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전 실버 라이닝이에요.”

© 2022 Ithaka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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