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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님의 타(他)자아다. 정확히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나를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그분이라면 “넌 내 타자아 중 하나‘였지’.”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왜냐하면 난 매개체로서 그분을 보내드리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제 난 그분에게 그저 조각상일 뿐이다.

세 번의 보름달에 걸쳐 기도드린 특별한 점토로 만든 손바닥 길이의 장식품. 표면은 대체로 매끄럽지만 수십 년 쓰임에 여기저기 흉 진 물체. 눈에 보이는 그분의 모든 특징을 담기 위한 정밀함의 결정체. 그분의 그윽한 보랏빛 눈, 장려한 검은 망토, 윤기가 흐르는 긴 회색 머리카락까지도. 그리고 특히나, 언제까지고 시들지 않는 고요한 얼굴까지도.

그분처럼 나도 절대 시들지 말았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그분의 타자아로서, 어디에나 놓일 수 있는 매개체로서 기능하며, 그분이 부르시면 깨어나고 늘어나 그분이 원하시면 언제든 인간의 형상을 한 마법사님이 되었어야 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언제든 그분이 될 수 있었다. 그분은 우리를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하수관에 놓으시거나, 거친 벽 틈새에 욱여넣으시거나, 검은 까마귀 등에 매다시고는 하셨다. 그저 그 새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럼으로써 그분을 어디로 데려갈지 보시려고 말이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조각상들을 써서 마법사님은 이성의 신봉자와 과학의 숭배자로 넘쳐나는 세계를 안전하게 여행하셨다. 특이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국경 순찰대나 정부의 눈에 띄신 적이 없으셨다. 여권도 없으셨고, 그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으셨으며, 그 누구의 아랫사람도 아니셨다.

누군가 그분을 쫓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공기 중에 흩어지셨을 테니 말이다. 그럴 경우 그분이 남기실 것은 점토 조각상뿐이었다. 그리고 속세인들은 한 사람이 조각상으로 변해버리는 현상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하지는 못하니, 조각상을 그냥 버려버리거나, 더 운이 좋다면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만약 광기 어린 충동에 휩싸인 속세인이 조각상 하나를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조각상의 최후일 뿐이지 마법사님의 최후는 아닐 것이었다.

각성한 에너지. 진동하는 의지. 초자연적인 힘. 그것이 바로 마법사님이셨다.

아니, ‘셨다’가 아니지. 그분은 지금도 그러하시다. 다른 조각상들도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그분의 충직한 종들이니까.

하지만 난 아니다.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한 마법. 그것이 바로 우리 조각상들이었다. 이제 마법사님은 내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고 여기신다. 나는 마법을 잃었다.

그분은 오늘 저녁, 나를 선택하셨으나 내가 그분을 통과시켜 드리지 못했을 때 그런 결론에 도달하셨다. ‘통과.’ 마법사님이 우리 조각상들 중 하나가 되는 과정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그분의 에너지가 우리를 통과해 더는 차갑고 작은 조각상이 아니라 있어야 할 기능이라면 전부 있는, 사람 크기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단순히 우리 신체 일부의 크기가 커지거나 길이가 길어지는 현상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생김새뿐 아니라 영혼마저 그분이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그분께서는 백단과 재스민, 라벤더가 섞인 냄새를 풍기시는데, 이는 속세인들에게 사람처럼 여겨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적절한 체온도 그렇고. 또한 21세기 인간들이 더는 감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감지하는 호르몬도 물론 그대로 본떠야 한다. 인간들이란 의식적으로는 눈치채지 못해도 공기 중의 그런 화학 성분들 맛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마법사님을 복제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생각엔, 그분의 피 덕분이다. 그분의 타자아가 될 조각상마다 바르시는 피 말이다. 세 번의 보름달을 요하는 탄생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매일 밤 그분은 손가락을 베신다. 매번 새로이 말이다. 그러고는 싱싱한 피를 한 방울 우리의 점토 표면에 바르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력을 준다. 또한 우리의 존재 이유도. 내게도 한때는 존재 이유를 줬었다. 그때는 그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었는데. 이제는 아니지만.

마법사님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다른 조각상 자아로부터 서울의 한 맨홀 아래 있던 내게로 통과하려 하신 바로 직후, 내가 마법을 잃었다고 결론을 내리셨다.

[움직이거라.]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분 명에 응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조차도 들 수 없었으니.

[움직이거라.]

그분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자 뭔가 상당히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그분이 내가 되셨을 터였다. 그분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거란 말이다. 그러니 내가 그분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었어야 했다. 따라서 내가 그분의 명령을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야 했다. 내게 그런 식으로 명령할 필요가 없으셨을 테니. 제대로 기능하는 여느 신체 부위처럼 저항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가 움직였을 테니.

뿐만 아니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도 안 났다. 인간들이 달고 사는, 입에서 나는 특유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 혀, 침, 호르몬, 그런 조잡스러운 것들의 맛 말이다. 마법사님이 인간의 형상을 띠실 때면 달고 사시는 바로 그 맛. 그리고 난 인간 여자 크기로 자라나지도 않았다.

내가 몇 분 이내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마법사님은 나를 떠나가셨다. 그분의 존재가 내게서 스며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어떤 타자아에게로 떠나신 것이었다.

적막한 골목에 자리한 맨홀 아래의 축축한 하수관에 누워, 나는 그분의 신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멀리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렇게 거의 완전한 고요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른다. 맨홀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의 방향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몇 시간은 지났던 것 같다.

간간이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갔지만 내가 흔들릴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었다. 몇몇 길고양이들이 야옹거렸지만, 녀석들 중 아무도 거대한 도시인 서울의 다른 여느 하수관과 다를 바 없는 냄새를 풍기는 맨홀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녀석들에게도 나는 무용했다. 마법사님께 내가 무용했듯이.

지금도 무용하듯이.

새벽이 가까워졌을 즈음 맨홀 사이사이로 손가락 몇 개가 비집고 들어왔다. 들어 올리기 어렵게 만들어진 맨홀을 자신 있게 움켜쥐는 자세를 보고 나는 마법사님이 도착하셨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몇 초 만에 맨홀이 내던져졌다. 하지만 아스팔트에 요란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대신 마법사님 위에 높게 둥둥 떠다녔다. 그분이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고장 났구나.”

그분이 평소처럼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분 뒤에서 비추는 달빛 때문에 표정은 전혀 관찰할 수 없었다. 아마 서울 근처에 있는 다른 조각상 자아를 통하시고는 이 하수관까지 비마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이동하셨을 터였다. 마법사님께서 그런 고난을 겪게 하다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특히 그분 목소리에서 전혀 분노나 실망을 느낄 수 없었으니 말이다.

마치 내가 언젠가는 고장 날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았다. 난 실패작이었으니까. 그분께서 만드신, 절대 시들지 말았어야 할, 따라서 절대 마법을 잃지 말았어야 할 피조물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그분께서는 놀라워하지 않으셨다.

“더는 너를 내 타자아로 쓸 수가 없구나.”

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속세에 속하게 된 조각상이었으니까.

그분께서는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궁금했다. 그러니까, 의식을 가진, 지각이 있는 존재라면 그러듯이, 진정으로 듣고 있다는 걸 말이다.

마법사들은 그들 피조물의 내적 삶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알 길은 없었다. 그분이 알고 계시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분이 내게 말씀하고 계셨지만, 속세인조차 간혹 생명을 품지 않은 물건에게 말을 걸곤 하니까. 마법사님은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셨던 걸까? 내 굴욕, 자기혐오, 혼란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계셨을까?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그분께서 휩쓸듯 내려오셨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하수관에 착지하셔서 부드럽고 창백한 손으로 나를 들어 올리셨다.

겁에 질린 나는 잠시나마 그분께서 나를 벽에 던져 깨뜨리시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그분께선 뛰어오르셨다. 지면보다 더 높게, 맨홀을 둘러싼 3, 4층 빌라들보다도 더 높게, 우리는 함께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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