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has a narrative about themselves. A prime example involves their job—the words they use to introduce themselves and describe what they do, along the lines of ‘I am a cook.’ ‘I am a musician.’ ‘I am a lawyer.’ ➰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서사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직업이 그렇습니다. 나는 ‘무엇무엇이오’라고 자기 소개를 할 때 쓰는 단어들 말이죠. ‘나는 요리사요.’ ‘나는 뮤지션이오.’ ‘나는 변호사요.’ 이런 단어들.
Based on this, people absorb the world they encounter. People who cook perceive the world as a feast of taste, smell, color, and touch of the various ingredients. People who make music might choose the next note according to the feel of the tone. And people who’re lawyers would interpret the news in today’s headlines completely differently, compared to others. ➰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이 마주하는 세상을 흡수합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갖가지 재료의 맛, 냄새, 색채, 촉감의 향연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뮤지션이라면 각 톤의 느낌에 따라 다음 음을 선택할지도 모르며, 변호사라면 오늘 헤드라인에 뜬 뉴스가 변호사가 아닌 사람과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게 되는 거죠.

My narrative frame ➰ 저의 서사 프레임

My narrative frame is ‘I am a storyteller.’ ➰ 제 서사 프레임은 ‘나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입니다.
Ever since I defined my narrative as ‘I am a storyteller.’ I’ve had very little in my life that I needed to truly throw away. People who tell stories can more or less use everything that happens to them, that they observe, hear, and feel. Personally, I think this vocation is a great bargain. Everything that you see, hear, eat, and even smell on a trip will come in handy at some point. This could be in the form of nonfiction, literature, written stories, spoken stories, you name it. ➰ ‘나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의 서사를 정의한 이후로, 제 삶은 참으로 버릴 게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발생하며 자신이 관찰하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대체적으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성비가 엄청난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가서 보고 듣고 먹고 심지어 맡은 냄새까지 언젠가 써먹을 일이 생깁니다. 비문학이든 문학이든 쓴 이야기든 말하는 이야기든, 전부 다.
Which is why I’m very happy—except, there’s one type of material that I cannot possibly make use of: the idiots you meet in real life. Recently, something happened, which painfully reminded me of their regrettably useless nature. ➰ 그래서 저는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유일하게 써먹을 수 없는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현실에서 만나는 또라이들입니다. 이들을 제가 써먹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저는 얼마 전에 겪은 사건으로 인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The inciting incident ➰ 사건의 발단

What happened was this: I encountered someone who exhibited the racist characteristics that some monolingual residents of the USA sometimes exhibit. ➰ 어떤 사건이었냐 하면, 미국에 거주하는 몇몇 단국어사용자들이 간혹 드러내는 머저리 인종차별성을 갖고 있는 자를 맞딱뜨린 일이었습니다.
To be more specific, this was a person who was monolingual, and therefore, assumed that others would be monolingual too. Moreover, this was someone who assumed that everyone with similar hair and skin color must fall in the same category. ➰ 더 자세하게는, 자신이 단국어사용자라서 남들도 단국어사용자일 줄 아는 자. 또한, 비슷한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은 다 같은 부류일 거라는 망상에 빠진 자.
For example, a person who thinks that Ithaka O., who looks Korean, must be in the same group as the other Korean-seeming people next to her. A person who doesn’t have enough power of imagination to even dream of another human being who can be fluent in both Korean and English. On top of that, a person who can do nothing but glare while multiple Korean-seeming people are gathered, and only when Ithaka O. is left alone, approaches her to recklessly interrogate her based on his own nonsensical delusions. ➰ 이를테면, 한아임이 한국인처럼 보이니까 옆에 있는 한국인 같은 사람들과 무조건 일행일 거라는 착각을 하는 자.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유창할 거라고 꿈꿔보지도 못하는 상상력의 결핍에 시달리는 자. 그리고 거기다 얹어서,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을 때는 야려만 보다가, 한아임 혼자 남자 그때서야 다가와서는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착각에 기반해 막무가내로 따져 묻는 비겁자.
At this point, you might be wondering: Seriously, what the hell happened? ➰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짝 궁금하시죠?
But let me assure you. This individual is so worthless that truly… he is useless. In fact, notice how, because of his total uselessness, I can only describe him in the context of big categorical concepts such as “racism” or “a monolingual.” He can only be used as an allegorical example. ➰ 근데 단언컨대 이자는 너무 무가치해서 정말로…… 쓸 데가 없습니다. 너무나 쓸 데가 없는 나머지, ‘인종차별’이나 ‘단국어사용자’라는 거대 범주로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화적 예시로만 쓰이게 되는 거죠.
In other words, this individual could never be a character—one that lives, breathes, and has desires and hopes. ➰ 즉, 캐릭터가 못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은. 살아서 숨 쉬며, 욕망과 희망이 있는 캐릭터.
Therefore, it was too obvious that I couldn’t use him as the material for fiction. ➰ 따라서 이자를 일단 픽션 소재로 못 쓸 것은 너무 뻔했습니다.
Yes, I’ve heard of the existence of some storytellers who are capable of using weird folks from real life for their fiction. But I love my villains too much. If I were to hate a character, I could never give it any attention. ➰ 현실에서 이상한 자를 만나면 그자를 픽션에 써먹는 이야기꾼들도 있다던데, 저는 제 악역들을 너무 사랑합니다. 만약 어떤 캐릭터를 싫어한다면, 저는 절대 그 캐릭터에게 분량을 못 챙겨줍니다.
Besides, the reason fiction writers might starve is not that fiction doesn’t make money, but that writing fiction makes you way hungrier than writing nonfiction. There’s nothing better than fiction writing if you want to lose weight. This is not a joke. I am completely serious. ➰ 게다가, 픽션을 쓰면 배고픈 이유는, 픽션이 돈이 안 돼서가 아니라, 픽션을 쓰면 논픽션을 쓸 때보다 정말로 배가 더 고파지기 때문입니다. 살 빼는 데 픽션 이야기를 엮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완전히 진담입니다.
So, when writing fiction, which makes me hungry anyway, I never use the material that I truly despise. Why would I attempt to pay attention to someone I detest, when I am already too hungry from all the neurons working their magic? ➰ 그러니 그 배고파지는 픽션을 쓰는 데에, 제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소재는 절대 쓰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머리 굴리느라 배고픈데 싫어하는 자의 분량을 챙겨줄 리가 있나.
Still, the injustice I felt at having been attacked by a monolingual racist was so great, I considered using him as material for some podcast episodes. ➰ 그래도 상상력 결핍인 단국어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습격당한 게 너무 억울해서, 이자를 팟캐스트 소재에라도 쓸까 했었습니다.
But you know what? Even that wasn’t gonna work out. This individual simply didn’t have enough interesting stuff going on to fill a one-hour episode. The story for such an episode was too obvious. ‘Let’s not be racists.’ Duh. How brilliantly dull. ➰ 그런데 그조차 안 되겠는 거 있죠? 이자는 도저히 1시간 분량을 채울 만한 건덕지가 안 되는 하급 머저리였습니다. 내용이 너무 뻔하잖습니까? ‘인종차별. 하지 말자.’ 재미가 없습니다.
So, once again, this individual can’t even function as a villain. ➰ 그래서 이자는 또 한 번, 악당조차 못 되는 겁니다.
That is why he can only be used as an allegorical, categorical example in a newsletter that takes about ten minutes to read—and only after I wrapped him with the frame of ‘uselessness in storytelling.’ Yes. Because I believe you are people who’re interested in stories, I used my narrative frame to make this useless individual useful. ➰ 그렇게 이자는 읽는 데 10분 정도 걸리는 뉴스레터에서 우화적, 범주적 예시로서밖에는 쓰이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도, ‘스토리텔링에의 무용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만. 여러분은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일 것으로 생각되어, 이 무용한 자를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 저의 서사 프레임을 이용한 겁니다.
I mean. It is important, recognizing racism. ➰ 아무튼. 중요하긴 하니까요. 인종차별을 인식하는 것은 유익하죠.
This individual’s case is especially appalling because he revealed his monolingual racism in Southern California, of all places—a location where all kinds of cultures join together. But no matter where something like this happens, it’s the same. ➰ 이자는 하필이면 온갖 문화가 뒤섞인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단국어사용자의 인종차별성을 드러내서 더욱 어이없는 케이스이긴 하지만, 다른 어떤 장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Guys. Just because someone looks like they're from a foreign country doesn't mean they can't speak the local language. Sure, this person might in fact be unable to use the local language, but the point is that their appearance does not determine that. There is little correlation between a person's appearance and the language that person speaks. As a human being, the language someone uses changes depending on where they are born (and barely even that), not depending on what they look like. ➰ 여러분? 어떤 사람이 외국에서 온 듯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현지 말을 못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현지 말을 못 할 순 있지만, 외국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이유가 되진 않는단 뜻입니다. 어떤 사람의 모양새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상관관계는 거의 없습니다. 원래 인간이란,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자기가 이용하는 말이 달라지는 것이지 (이조차도 좀 간당간당한 기준이고), 생긴 것 때문에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Of course, there might be different overall trends from region to region. (Ex: Most people with blonde hair in Korea are tourists, so there is a high probability that they cannot speak Korean.) However, beyond such overall trends, it is a huge mistake to think that each individual with blonde hair cannot speak Korean. ➰ 물론 지역마다 경향이 있다고 여길 순 있죠. (ex: 한국에서 보이는 금발머리 소유자들은 대개 관광객이라서 한국말을 못 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경향을 떠나서, 금발머리를 한 사람들 개개인이 한국어를 못 할 거라고 여기는 건 어마어마한 착각입니다.
Everyone who signed up for this newsletter is totally awesome and incredibly smart, so I think you all know. ➰ 이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는 분들은 전부 완전 멋지고 킹 똑똑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두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What’s more important is this. Let us all live lives in which we can qualify as villains. Because, all villains are protagonist-worthy. In fact, villains need to be more protagonist-worthy than protagonists. Protagonists are sometimes protagonists ‘just because,’ whereas a villain’s existence requires way more worthiness. ➰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겁니다. 우리 모두, 악당이 될 수 있는 삶을 삽시다. 왜냐하면 모든 악당은 주인공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주인공감이어야 합니다. 주인공은 그냥 주인공인 경우도 있는데, 악당의 존재에는 더 많은 합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When the protagonist is worthy and strong, a villain is a villain for being able to stand against the protagonist and support the pressure. When the protagonist is weak and insignificant, a villain is a villain for inflicting narrative meaning to the life of that insignificant protagonist. ➰ 주인공이 합당하며 세다면, 악당이 악당인 이유는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는 압박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약하며 별 볼 일 없다면, 악당이 악당인 이유는 그 별 볼 일 없는 주인공의 삶에 서사적 의미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Because villains are so important, not only is there a protagonist and a villain within a story, but also there are hero stories and antihero stories in terms of story genres. ➰ 이렇게 중요한 악당이기에, 한 이야기 내에서만 주인공과 악당이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장르적으로도 히어로물이 있다면 안티히어로물도 있는 것이죠.
But I guarantee, even if I’d experienced something way way way way more outrageous due to this monolingual racist, this individual probably would not have been able to play the role of a villain. This is because he is such an idiot, so a protagonist (in this case, Ithaka O.) who cannot win against this idiot would trigger the wrath of the readers, and that wrath would be greater than their wrath toward the idiot himself. ➰ 그런데 장담컨대, 제가 이 단국어사용자이자 인종차별자인 자에게 더더더더더 많이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이자는 아마 악당 역을 못 맡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너무 머저리라서, 이 머저리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이 경우, 한아임)에 대한 독자의 분노가 머저리에 대한 분노보다 더 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If I am to be a worthy protagonist, I must prevail over this individual. (In real life, it is unclear what ‘prevailing’ means. But here, I mean ‘prevailing’ in the storytelling sense.) ➰ 제가 합당한 주인공이려면 이자를 이겨야 하는 겁니다. (실제 삶에서 이자를 이기는 게 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서사적 의미에서 ‘이긴다’는 겁니다.)
If this individual absolutely had to appear in fiction, he wouldn’t have been able to be the villain by himself. Instead, the story would’ve needed to lead to a lawsuit in which the impracticality of the legal system is pointed out. Or, it could’ve been about an Individual vs. Institution kind of fight, with the institution being the golf course where this incident happened. ➰ 만약 이자를 꼭 픽션에 등장시켜야겠다면, 이자 혼자로는 악당을 못 했을 겁니다. 그보다는 법적 소송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서 법적 체계의 비실용성을 꼬집는다든지. 이 사건이 벌어진 골프장과 개인 대 집단 차원에서 싸움을 벌인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했을 겁니다.
(Yes, a golf instructor at a golf course behaved like this toward me. No, he isn’t even my instructor. Even before this incident, I'd thought that his teaching style was extremely low-level, based on how shitty he treated his students. At any rate, since I didn't hire this individual, if he'd been a normal person, I never would’ve even needed to talk to him. Isn’t he a true idiot? Literally, does he not watch the LPGA? Is he unaware of how many people there are from Korea? I myself am not very good at golf, but what good could it possibly do you to treat people from Korea in this way… You're already notorious among people from Korea…) ➰ (네, 골프장에서 골프 가르친다는 강사가 저한테 저러더군요. 아뇨, 제가 고용한 강사 아닙니다. 이 사건 전부터, 이자가 학생을 막 대하는 태도로 봐서 이자가 가르치는 게 저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제가 고용한 자가 아니니까, 이자가 정상인이었더라면 저랑 말 섞을 일도 없었겠죠. 그런데 이자 진짜 머저리 아닙니까? LPGA 안 봄? 거기서 몇 명이 한국 출신인지 모름? 저는 골프를 잘 못 칩니다만, 저를 비롯한 한국계 사람들한테 이렇게 해서 너한테 좋을 게 뭐람…… 너는 이미 한국계 사람들 사이에서 악명 높아졌어……)
Anyway, the point is, the role of the villain cannot be filled with this low-level idiot. What kind of a sad life is this? A life that only functions as an allegorical example, one buried under the weight of the herd and fades into nothing. ➰ 뭐가 됐든, 이 하급 머저리로는 악당의 역할을 채울 수 없었을 거란 뜻입니다. 이 얼마나 슬픈 삶입니까? 우화적 예시, 떼의 일부로서 희미하게 사라져 묻히는 삶이라니.
Honestly, I wanted to transform Mr. Useless into Mr. Useful. To me, storytelling is the process in which all things scattered in this world are connected and made meaningful. ➰ 아, 정말이지 저는 어떻게든 이 무용자를 유용자로 탈바꿈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흩어진 것들을 잇고, 의미 있게 하는 작업이 이야기하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And, isn't this useful for real life? From now on, if someone makes life difficult for you, examine if that person is a low-level idiot or a villain. You might also consider positioning yourself as a powerful protagonist. Or, you could position yourself as the villain who mercilessly brings justice to the feeble low-level idiots who think they are the protagonists. ➰ 그리고, 이거 현생에서 유용하지 않나요? 앞으로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가 있으면, 그자가 하급 머저리인지 악당인지 검토해보고, 스스로를 강력한 주인공으로 포지셔닝 해보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그 빈약한 하급 머저리를 자비 없이 처단하는 악당으로 포지셔닝 해도 좋고요.
Since you are subscribed to my newsletter, of course I am on your side, first and foremost. ➰ 여러분이 제 뉴스레터 구독자들이시니까, 저는 당연히 일단 여러분 편입니다.
I sincerely hope that your ambition, your dreams, sadness, rage, affection, and all other things shine more crystal-clearly. That way, you can be the protagonist worthy of your own story. If not that, you can be the villain who radiantly outshines the protagonist. ➰ 아무쪼록 여러분의 야망. 여러분의 꿈. 슬픔. 분노. 애정. 그 모든 것들이 보다 선명하게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서사의 합당한 주인공, 그게 아니라면 주인공보다 더 찬란한 악당일 수 있을 만큼 아주 환하게요.

Vault Updates

Ithaka Dreaming Season 1 ended! [Ep. 12] 📻 Life and death are but two parts of the same cycle. was the last episode.

In Pure Fiction, Moonlight Through the Manhole has been uploaded.

Vault 업데이트

아임 드리밍 시즌1이 끝났습니다! [Ep. 12] 📻 블루오션: 집합의 조우가 마지막 에피소드였습니다.
💌 That's it for today. Hit reply to say hello! ➰ 오늘은 이게 다예요. 그냥 한번 말 걸어보고 싶다면 이 이메일에 답장하시면 됩니다. 😄